腸과 腦의 리듬, “밀접한 연결고리 있다”

우리 몸은 수많은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생체 주기부터 심장의 박동, 뇌 속 혈류의 맥동까지, 이 모든 것은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작동한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이러한 조화의 비밀이 ‘장(腸, gut)’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미국 UC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연구팀은 장의 리드미컬한 근육 운동이 뇌 속 미세혈관들이 함께 확장·수축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에 최근 게재되었다.

▲장의 움직임에서 찾은 뇌의 리듬

뇌에서 신경세포(뉴런)가 활성화되면, ‘소동맥(arteriole)’이라 불리는 미세혈관이 산소와 영양분을 더 공급하기 위해 팽창한다.

놀랍게도 이 혈관들은 서로 박자를 맞춘 듯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이러한 ‘동조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밝혀내지 못했다.

UC 샌디에이고 연구팀은 그 해답을 ‘소화기관’에서 찾았다. 장은 음식물을 이동시키기 위해 일정한 파동 형태의 수축 운동을 반복한다. 연구진은 이 운동이 ‘계단형 리듬(staircase-like oscillation)’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와 유사한 원리가 뇌 속 혈관에도 작용해, 서로 다른 부위의 혈관들이 마치 한 몸처럼 호흡하듯 리듬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으로 풀어낸 ‘몸의 리듬 공식’

연구를 이끈 마시모 베르가솔라(Massimo Vergassola) UC 샌디에이고 물리학과 교수는 “장 속 각 구간은 일종의 ‘진동자(oscillator)’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리듬을 만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반적으로 진동자 연구는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단순한 시스템에서 진행되지만, 장과 뇌는 서로 다른 주파수의 진동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수학적 모델을 통해 주파수가 비슷한 진동자끼리는 서로의 리듬을 맞추며 ‘단계적 전환(step-like transition)’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는 마치 음식물이 장을 따라 부드럽게 이동하는 현상과 같은 원리로, 뇌 속 혈류의 흐름을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 연구자인 데이비드 클라인펠드(David Kleinfeld) 교수는 “이전에도 유사한 수학적 접근은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리듬이 끊기는 지점과 이어지는 과정’을 명확히 규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뇌와 장, 서로를 비추는 거울

이번 연구는 뇌의 기능뿐만 아니라 음식물 이동, 수분 흡수, 배변과 같은 소화기계의 운동 장애를 이해하는 데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클라인펠드 교수는 “뇌는 장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이런 단순한 생리적 리듬 속에서 큰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며 “한 가지 질문이 또 다른 해답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다시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오는 것이 과학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몸의 리듬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조화를 이루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생리학적 호기심을 넘어, 소화기 질환과 뇌질환 모두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UC 샌디에이고 연구팀은 장의 파동 운동 원리를 응용해, 뇌 속 미세혈관들이 리듬을 맞춰 확장·수축하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이는 향후 뇌 기능 연구와 소화기 질환 치료의 새로운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